나는 나만의 사건이에요

나는 나만의 사건이에요_이희숙 낭독

낭독_ 이희숙

이도영 시인의 시집을 엘리사벳의 서재에서 소리시집으로 기획해 총 61편의 시를 음악과 함께 한 편 한 편 감상할 수 있도록 담아냈다. 이도영 시인의 이 새로운 시집은 시인이 「프롤로그」에서 의미심장하게 썼듯, 우리는 매 순간 미세하게 혹은 폭발적으로 달라지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생활의 곳곳에서 한없이 낯선 자아를 만나기도 한다. 정체성을 상실한 ‘익명’의 제3지대는 “문제는 집이 너무 크고 식구가 없는 거예요/ 그러니까 아늑하지 않은 약점이 있어요/ 마실 오는 이도 없구요/ 그래요, 그래서 무너지고 자꾸 무너져요/ 바람이 많은 유배지”(「샤갈의 마을」)로써 ‘내’ 삶에 엉겨 있다. 마음 한구석에 ‘유배지’를 마련해야 하는 우리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. 끊임없이 익명으로 밀려나는 이 지독한 천형은 누구의 심판이었을까. 하지만 어느 순간 ‘익명’은 존재의 필연적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. “막 세수한 맨 얼굴로/ 렌즈 밖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/ 주인공일 필요가 없는/ 드디어 드디어/ 행인 1, 행인 2가/ 제 걸음을 걷”(「프롤로그」)게 되는 것이다. 이름을 박탈당한 미지의 존재들이 ‘제 걸음’을 걷는다는, 이 독특한 발견은 “그런 길이 있군요/ 모터 갈고 밸브 바꾸느니/ 차라리 사시죠!// 심장 갈고 허파에 기포 빼내고 혈관 교체하면서라도/ 사시죠// 관절이탈 혈관폐쇄/ 아무리 흔한 증세라고 하여도/ 나는 나만의 사건이지요”(「나는 나만의 사건이에요」)라는 고백으로 이어지며, 이로써 “노예근성의 DNA를 잃어버리고/ 거룩한/ 새로운 생물이 나는 되는 중이다”(「지금 탑석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」)라는 선언이 가능해진다. 주목할 것은, 이 선언이 자기 확신과 더불어 진리와 연결된다는 점이다. 바디우가 통찰했던 것처럼, 예술도 진리 추구의 한 영역이다. 우리는 ‘새로운 생물’이라는 단어를 통해 시인이 갈망한 변화의 이미지(혹은 사건)를 구축할 수 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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